국가유공자 보훈 사업

태극기 이미지 - 자생의료재단

수감번호 '1679' 독립운동 하다 옥고를 치룬 한의사 신광렬 선생 #1편

등록일
2020.09.28
조회수
3,572

수감번호 '1679' 독립운동 하다 옥고를 치룬 한의사 신광렬 선생 #1편 | 자생한방병원·자생의료재단

 

1930년 서대문형무소, 옆구리에 기다란 자상을 입은 남자가 투옥됐습니다. 그가 부여 받은 수감번호는 '1679' | 자생한방병원·자생의료재단

 

그는 독립운동의 또 다른 숨은 영웅, 한의사 신광렬 선생입니다. 3·1운동 11주년을 맞아 간도에서 대대적으로 일어난 시위운동*에 참여하다가 일본 경찰에 체포됐죠. (*제3차 간도공산당 사건으로 불린다.) | 자생한방병원·자생의료재단

 

신광렬 선생의 독립운동 스토리는 최근에서야 월남유서*를 통해 밝혀졌습니다. (*월남유서: 신광렬 선생이 이북에서 내려오며 자손들에게 전하기 위해 쓴 자신과 가족의 일대기(초본 1959년 작성)) | 자생한방병원·자생의료재단

 

신광렬 선생은 독립운동 한의사 신홍균 선생의 조카였습니다. 그가 아홉 살이 되던 해에 작은아버지인 신홍균 선생을 따라 만주로 향했고, 그곳에서 일제가 자행한 침략의 역사를 겪으며 성장하게 됩니다. | 자생한방병원·자생의료재단

 

신홍균 선생이 대진단 단장으로 맹활약하던 당시, 삼숙 신동균이 일본군에 수장을 당하면서 일본에 대한 원한은 커져만 갔습니다. 당시 신광렬 선생의 나이는 17세였습니다. | 자생한방병원·자생의료재단

 

이런 열악한 상황에서 그는 아픈 사람들을 돌보는 일을 하기로 마음 먹습니다. 신홍균 선생의 영향으로 20세 전에 한의학을 수학했고 24세에는 양의학 공부에도 집중해 사립의원에 종사합니다. | 자생한방병원·자생의료재단

 

그러던 27세, 제3차 간도공산당 사건으로 체포되면서 10개월간 수감생활을 하게 됩니다.| 자생한방병원·자생의료재단

 

10개월 후 혐의를 벗고 풀려났으나 감옥에 있던 혹독한 시간을과 칼에 베인 흉터는 그에게 평생 잊지 못할 상처로 남습니다. | 자생한방병원·자생의료재단

 

이런 열악한 상황에서 그는 아픈 사람들을 돌보는 일을 하기로 마음 먹습니다. 신홍균 선생의 영향으로 20세 전에 한의학을 수학했고 24에는 양희학 공부에도 집중해 사립의원에 종합니다. - #2편에 계속| 자생한방병원·자생의료재단