국가유공자 보훈 사업

태극기 이미지 - 자생의료재단

독립운동가 김중건과의 만남, 신홍균의 삶을 송두리째 바꾸다

등록일
2020.08.31
조회수
3,380

기업인 한의업을 이어받아 한의사로 성장한 신홍균 선생, 그는 어떻게 독립운동을 시작하게 된 걸까요? | 자생한방병원·자생의료재단

 

경술국치 다음해인 1911년, 당시 서른이었던 신홍균 선생은 모든 걸 버리고 가족과 함께 만주로 향합니다. *경술국치: 1910년 8월 29일 일제의 침략으로 한일합병조약을 강제 체결하며 국권을 상실한 치욕의 날 | 자생한방병원·자생의료재단

 

만주로 떠나온 지 5년째 되는 여름, 그의 삶을 송두리째 바꿔놓은 인물을 만납니다. 김중건(1989년12월6일~1933년3월24일): 민족종료 원종교, 독립군 대진단을 만들어 항일무장 투쟁을 펼친 독립운동가 | 자생한방병원·자생의료재단

 

신홍균 선생은 김중건을 스승으로 여기며 그를 따라 독립운동에 뛰어들었습니다. 그러던 1920년, 김중건이 일본군에 체포됩니다. | 자생한방병원·자생의료재단

 

김중건이 석방된 후에도 그들은 숱한 고비를 함께 견디며 무장투쟁을 이어나갔습니다. 하지만 1933년, 한국독립군과 연합을 준비하던 중 김중건은 조선공산군의 습격으로 안타까운 죽을을 맞이합니다. | 자생한방병원·자생의료재단

 

실의에 빠질 새도 없었습니다. 신홍균 선생은 김중건의 마지막 지시를 이행하기 위해 부하들을 이끌고 한국독립군에 합류합니다. | 자생한방병원·자생의료재단

 

김중건을 옆에서 지키지 못했다는 한(恨)은 김중건의 몫까지 독립운동을 해나가겠다는 의지로 바뀝니다. | 자생한방병원·자생의료재단

 

그렇게 죽을 때까지 독립운동에 매진한 신홍균 선생, 그가 어떤 마음으로 독립운동에 목숨까지 바쳤는지는 여전히 다 헤아리기 어렵습니다. | 자생한방병원·자생의료재단

 

다만 확실한 한 가지, 아픈이웃을 돌보는 한의사로의 삶과 민족을 지키고자 했던 독립운동가로서의 삶, 신홍균 선생에겐 결국 같은 의미였던 게 아닐까요? | 자생한방병원·자생의료재단

 

자생의료재단은 신홍균 선생의 숭고한 희생정신을 이어받아 어려운 이웃들을 위한 활동을 이어나가겠습니다. | 자생한방병원·자생의료재단